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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3/박현진

박현진 사회복지사의 2017년 7월 6일 이야기

  “안쓰럽네요.”, “많이 힘들죠?


  업무가 바뀌고 나서 아침인사로 가장 많이 듣는 말입니다. 매일 올리는 실천기록을 읽어보니 너무 고생을 하는 것 같다며 위로의 말을 해주십니다. 사실 위로의 말을 듣고 감사했지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왜 우리가 안쓰럽지?’였습니다. 하루하루 나아지는 것이 없었다면 한승일 사회복지사와 저는 힘들어하고 있었을 겁니다. 실천기록을 작성한 것을 보면 아시다시피 하루하루 이루어진 일에 감사하고 행복한 이야기로 채워가고 있습니다. 걱정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그 걱정 또한 성장을 위한 원동력이라 생각하며 원천동에서의 활동을 즐기고 있으니 혹시 원천동 담당 사회복지사가 불쌍하게 보이신다면 그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오늘은 첫 주간회의를 하는 날이었습니다. 조직개편으로 인해 자주 못 보고, 소통하지 못하는 만큼 회의 분위기가 이전보다 편해진 것 같았습니다. 딱딱한 보고형식이 아닌 고민을 나누고 활동을 공유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되는 것 같아 그 자리에 있는 게 불편하지 않았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오늘의 회의는 역량이 부족했던 간접사업 담당자가 아닌 한 명의 사회복지사로서 참여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간접사업 담당할 때 사실 사업담당 사회복지사분들이 부러웠습니다. 회의 때마다 ‘자원봉사…홍보….’라는 단어가 들려도 심장이 놀라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에 좋았습니다.


  원천동에 도착하자마자 오늘도 등나무 벤치로 갔습니다. 이미 2시가 다되어가는 시간이라 많은 분들이 앉아계셨습니다. 그 중에는 어제 뵈었던 호탕한 어르신과 꾀꼬리 어르신도 계셨습니다. 반가운 마음에 인사를 드렸더니 어르신들은 오늘 안 오는 줄 알았다며 기다렸다고 하시며 저희를 반겨주셨습니다. 놀라웠습니다. 어르신들과 3번째로 인사를 나눈 날이었기 때문입니다. 3번의 인사를 나누니 저희를 기다려 주셨습니다. 앞으로 10번째…100번째…인사를 나누는 날엔 어떤 모습일지 기대가 되었습니다.


  항상 멀찍이 앉았던 것과 다르게 용기를 내 꾀꼬리어르신 옆에 살포시 앉았습니다. 아무도 몰랐겠지만, 저한텐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습니다. 오늘은 이상하게 신이 났습니다. 어르신들이 반갑게 맞이해주셔서인지 몰라도 좀 더 신난 목소리로 신난 몸짓으로 편하게 대화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오늘도 여러 가지 특별하지는 않아도 소중한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서로의 나이를 맞춰가며 서로를 알아갔습니다. 그 중 연세가 가장 많은 연보라어르신(연보라색 상의를 곱게 입고 계신 모습이 인상적이었습니다.)은 바로 옆에 앉아있는 저에게 종교가 무엇이냐 물었습니다. 사실 순간적으로 고민했습니다. ‘나는 기독교인데 혹시 불교이시면 어떻게 하지.’ 제 대답으로 공감대가 형성될지 말지 정해진다는 사실에 걱정하며 기독교라고 말씀을 드리니 매우 좋아하셨습니다. 다행히 연보라 어르신도 기독교였습니다. 같이 이야기를 듣던 호탕한 어르신은 ‘이 동네는 거의 기독교야~’라고 말씀해주셨습니다. 하긴 어제도 어떤 어르신이 등나무 벤치를 찾은 저희에게 교회 전도지를 나눠주셨던 일이 있었습니다.


  오늘은 더 많은 분들이 저희가 사회복지사인걸, 별다른 목적 없이 친해지기 위해 왔다는 것을 받아들여주신 것 같았습니다. 20대인 저희의 결혼을 걱정해주시는 등 일상의 대화를 나눌 수 있었습니다. 생각보다 어르신들의 자제분도 결혼을 늦게 하거나 지금까지도 하지 못해 포기하셨다면서 짝만 있으면 가능한 빨리 가라고 조언해주셨습니다.

  오늘은 50대로 보이는 중년의 아주머니 두 분도 함께였습니다. 어르신들은 우리를 손자녀로, 아주머니들은 자녀로 생각해주시는지 편하게 대화할 수 있었습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어렵고 불편하게 바라봐 주시지 않으시는 것 같았습니다. 아주머니 두 분은 이미 어르신들과도 친한 사이인 것 같아 보였습니다. 시원한 얼음물도 서로 나누어 드시길래 저희도 얻어 마셨습니다. 등나무 벤치에 앉아있으면 정말 일상적인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들을 수 있습니다. 신발가게가 새로 생겼는데 가면 밥도 공짜로 준다 하더라, 이 연고면 땀띠랑 벌레 물린 거 한방에 해결된다 하더라, 땀띠 약 사러 123약국 다녀왔는데 주차문제로 난리더라…. 123약국 주차 문제를 이야기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주공아파트 주차문제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갔습니다.

  주공아파트 주차장에는 입주민들보다 아주대학교나 아주대학교병원 관계자, 인근 주택 거주자, 근처 아주아파트 입주자 등 외부인이 주자창을 점거하는 경우가 다분해서 어려움을 겪고 계신다고 합니다. 연락처도 없이 차를 방치해두고 가서 골치 덩어리라고 하시며 관리사무소에서 방문증 받으면 되는데 왜 안 받는지 모르겠다며 푸념하셨습니다. 어르신들은 주차문제에 관심이 상대적으로 적어 보이셨지만 아주머니들은 주차문제에 민감하신 것 같았습니다. 관리사무소에 가면 방문증을 받을 수 있다고 친절히 알려주셔서 한승일 사회복지사와 관리사무소를 방문했습니다.

관리사무소에 계신 경비원분이 방문증을 작성해주셨습니다. 방문증은 최대 3일이라고 하셨습니다. 관리사무소를 자주 찾아뵐 구실이 생겼습니다. 3일에 한 번씩 꼬박꼬박 찾아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저희를 궁금해 하시지 않을까 싶습니다. 관계가 쌓이고 나서 말씀드리면 궁금한 것을 더 잘 물어보실 것 같고, 이해하시기 수월할 것 같습니다.


  방문증을 펄럭펄럭 휘날리며 등나무벤치에 앉아계신 어르신께 받고 왔다고 보여드리니 잘했다고 칭찬해주셨습니다. 그 중엔 오늘 처음 뵙는 주민 분들도 많았는데, 굳이 따로 인사를 드리지 않았어도 자연스레 관계는 시작된 것 같았습니다. 도리어 ‘이 분들은 누구예요?’ 라고 물어보시는 아주머니에게 꾀꼬리 어르신은 저희를 대신해 ‘우리랑 여기 앉아서 같이 놀라고 온 사람들이야~’라고 소개해주시기도 하셨습니다. 이젠 저희를 ‘사회복지사’란 역할보다 친근하게 생각해주시는 것 같았습니다.


  어떠한 매개체가 없어도 관계를 형성할 수 있음을 원천동에 와서 배우고 몸소 체험했습니다. 서로 이름을 알지 못해도 친해질 수 있음을 알았습니다. 등나무벤치에 찾아오는 분들은 서로 이름도, 나이도 모르지만 서로의 안부를 물으며 살아가는 이야기를 나누고 계십니다.

사회복지사로서 ‘성과’ 없는 활동을 할 수 없습니다. ‘성과’에 대한 고민은 여전히 많습니다. ‘성과’라는 건 업적과 같은 걸까요. 사람들의 욕구를 찾는 것만이 ‘성과’일까요….


  저는 이렇게 제 얼굴을 알고 저를 반겨주는 주민이 한 분씩 늘어가는 것이 지금으로서는 가장 중요한 ‘성과’라고 생각합니다. 등나무 벤치를 찾는 많은 이유 중 하나에 저희가 추가되면서 그 분들의 삶에 조그마한 행복과 즐거움을 안겨드릴 수 있게 되는 것 또한 사회복지사로서 느낄 수 있는 소중한 ‘성과’라고 기억하겠습니다.


  오늘도 커피다움을 방문했을 때, 사장님이 먼저 조끼에 달린 뱃지를 보고 ‘사회복지사이세요? 힘든 일 하시네요.’ 라고 먼저 말을 걸어주셨습니다. 사장님이 오늘은 기본으로 나오는 프레첼을 2접시나 주셨습니다. 저희를 반겨주시는 것 같아 기분 좋았습니다. 사장님께 살짝 새로 발행할 마을신문을 말씀드리며 ‘커피다움’을 싣고 싶다고 말씀드렸더니, 흔쾌히 수락하시며 좋아하셨습니다.


  오늘은 제가 먼저 인사하지 않아도 인사를 건네주는 분들이 있어 감사한 하루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