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진 사회복지사의 2017년 7월 12일 이야기
오늘 오전에는 초복행사에 함께 참여했습니다. 식당에서 음식을 준비하시거나 행사를 진행하는 데 직접적으로 참여한 동료들 보다는 신체적으로 고된 일을 담당하지는 않았지만, 왠지 모르게 피곤해진 마음과 몸을 이끌고 원천동에 도착했습니다.
피곤하니까 인사만 드리고 카페(거점)에 가야지 하고 등나무 벤치로 향했는데, 그곳에서는 우리가 꿈꾸던 사람냄새 나는 사람살이가 이루어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별거 아니었습니다. 부녀회장님이랑 총무님이 특별한 이유 없이 수박 한 통을 가져와 등나무 벤치에서 어르신들과 나누고 계셨습니다.
부녀회장님은 ‘발이 복이야~(수박을 나누는 타이밍에 찾아온 것은 다 발걸음 덕분이다.)’라며 저희에게도 커다란 수박조각을 하나씩 나누어 주셨습니다. 몇몇 어르신도 저희를 반가워해주셨습니다. 이제 얼굴이 익숙한 몇몇 분들과는 인사를 나눌 때 친근한 눈빛은 덤으로 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시원한 등나무 벤치에 앉아 수박을 먹으니 더위는 잊은 지 오래였습니다. 저희도 주공아파트 주민들과 수박을 나누려고 준비 중이었습니다. 혹시나 수박을 나누어 먹는 일이 ‘부자연스러운’ 일이 되지는 않을까 걱정했었는데, 이곳에서는 매우 ‘자연스러운’ 일이었습니다. 멋쩍어 하며 ‘저희도 수박이 우연히 생겨 나누려 했었는데….’ 라고 하니 더 반겨주셨습니다. 부녀회장님은 어르신들에게 금요일에는 복지관에서 수박을 대접한다고 오늘 못 나오신 어르신들께도 말해달라며 소문내주셨습니다.
원래는 저희가 준비하려했던 수박나눔은 거창하진 않았지만, 예쁘게 자른 수박을 투명컵에 담아 주민들과 관리사무소, 경로당, 근처 상가에 나누어 드리려 했습니다. 이러한 계획을 부녀회장님에게 말씀드리니 부녀회장님께서는 ‘그럴 필요 없어~ 오늘처럼 (소박하게) 나누어 먹는 게 더 정 많고 푸짐해 보여~’라고 하시면서 수박나눔할 때 필요한 쟁반과 칼을 챙겨 나와 함께 할테니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투명컵에 예쁘게 담아 먹기 좋게 나누어 드리는 게, 주민을 위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주민에게 묻고 의논하고 나니 ‘부자연스러운’ 일이 될 뻔 했다는 걸 느꼈습니다. 주민에게 묻고 의논하니 일하는 과정이 편해졌습니다. 복지요결에서 본 문장을 몸소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이번 수박나눔에 큰 의미를 부여하고 싶진 않지만, 소망이 하나 있다면 수박나눔을 통해 사회복지사인 저희를 ‘돕는 사람’이 아닌 ‘편한 사람’으로 알아봐주길 바랍니다. 일상적인 대화에서 한 단계 나아가 우리가 어떤 사회복지사인지 주민들에게 알릴 수 있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그저 ‘돕는 사람’ 보다는 주민들에게 ‘편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동네에 있었던 이야기나 재미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편한 사람, 혼자여서 심심하면 같이하자고 말할 수 있는 편한 사람, 고민이 있을 때면 쉽게 털어 놓을 수 있는 편한 사람….(사실 ‘편한 사람’이 사회복지사로서 올바른 모습인지는 아직 확신이 없습니다만, 우선은 그저 어려운 사람을 돕는 사람으로 인식되는 것이 아니라 주민에게 편하게 다가가고 싶다는 마음을 담아 정해보았습니다.)
그 과정 또한 부자연스러워서는 안 됩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함께 고민해서 이 소망을 이룰 수 있는 수박나눔이 되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오늘은 김세진 선생님이 저자인 ‘지역복지 공부노트’ 스터디를 처음으로 시작했습니다. 보고 느끼는 바가 많았습니다. 주민의 욕구를 반영하여 활동을 만들어내는 것에만 몰두했었는데 책을 읽고 나니 주민이 주인이 되게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쩌면 조직사업이 어려웠던 이유가 주민이 주인이 아니라 사회복지사와 주민이 서로 돕는 관계가 되어버려서는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회복지사는 주민이 하게끔 돕는다고 했지만 막상 보면 주민과 사회복지사가 일을 분담하는 형태로 진행되는 경우가 많았던 것 같습니다. 이 사실을 잊지 않고 주민이 주인이 될 수 있게끔 의도를 담아 대화를 진행하고, 역량을 가진 주민을 찾을 수 있는 능력을 키워야겠다는 생각이 든 하루였습니다.
매일 아침, 원천동으로 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고 지치기도 하지만, 이상하게 일일기록을 쓰면서 하루를 정리할 때면 ‘오늘 하루도 행복했다’는 생각만 듭니다.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루하루 힘들 때도 있지만 마지막에 보면 사회복지사로서 행복했던 순간이 될 것 같아 기대됩니다.